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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자이델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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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자이델 박사에 관하여

Hanns Seidel

한스 자이델 박사

1957. 10. 16 – 1960. 01. 22. : 바이에른 주 총리 역임
1947-1954: 바이에른 주 경제부 장관 역임
1955-1961: 기독교 사회 연합당(CSU) 총재 역임


한스 자이델 박사는 1901년 10월 12일 아샤펜부르크 시 근교의 슈바인하임에서 출생하였다. 7 년 후인 1908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스 자이델 박사는 궁핍하고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이를 통해 책임과 절제의 가치를 배웠다. 1921년부터 1925년까지 한스는 뷔르츠부르크대학과 예나대학에서 법학, 독문학 및 경제학을 공부하는 중에도 개인 교습부터 광산 채굴까지 하며 자립하였다. 1929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아샤펜부르크에서 법률 사무소를 개업하였고 그 해 일세 텐터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한스 자이델 박사의 활발한 정치 활동 시작은 1930년부터이다. 1932년에 바이에른 폴크스파티에 가입하였으나 1933년에는 나치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로 일시적으로 수감 생활을 하게 됬다. 이후 잠시동안 리투아니아의 메멜에 있는 친척집에 얹혀 살며 강제수용소에 보내지는 것을 면했다. 그의 아샤펜부르크의 귀환은 한층 더한 협박과 직업 활동의 규제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그는 히틀러의 집권의 붕괴를 가져온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고 1945년 6월에 제대하게 된다.


전후 1945년에 미군정은 한스 자이델 박사를 아샤펜부르크 군수로 임명을 하였다. 1946년에는 기독교 사회 연합당(CSU)를 창립하였고 바이에른주의 헌법을 제정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첫 번째 전후 바이에른 주 선거에 출마하여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보직한 바이에른 주 의원에 당선되었다. 1947년 9월에 한스 에하르트 바이에른 주총리는 한스 자이델 박사를 주 경제부 장관에 임명하였으며, 이후 7년간 한스 자이델 박사는 경제를 재건하고 개혁하는 일과 전쟁 난민과 망명자를 통합하는 등 전쟁 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을 쏟아부었다.


1954년 바이에른주 선거에서 기독교 사회 연합당(CSU)이 가장 많은 득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합당 협상은 기대와는 다르게 기독교 사회 연합당(CSU)이 배제된 4개의 당이 연정을 구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 사회 연합당(CSU)은 야당이 되었고 한스 자이델 박사는 기독교 사회 연합당(CSU)의 원내 대표로서 야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일 년 후 1955년에는 한스 자이델 박사는 기독교 사회 연합당(CSU)의 총재가 되면서 그는 이 연합을 선구적이고 종교적인 정당으로 개혁하려는 근본적인 시도를 시작한다. 1956년 미국 답사 기간 동안 바이에른 미래 발전에 전략적 지침을 준 미국의 경제, 사회, 정치적 체계에 감명을 받았다.


1957년 연방 선거 후 4개의 당으로 이루어진 연정이 붕괴되고 바이에른 주의회는 한스 자이델 박사를 주 총리로 선출하였다. 1958년 바이에른 주 선거 이후 정부가 한스 자이델 박사를 다시 주 총리로 지명하면서 한스 자이델 박사는 바이에른 총리를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역임 했고 지역 사회 기반 시설 재건, 근대적 에너지 정책, 주 내 교통 통신 네트워크 등 그가 경제부 장관에서 취했던 정책을 재개했다. 한스 자이델 박사는 바이에른의 경제, 행정, 사회 분야에 걸쳐 근대화를 이룩해 내면서 농업 위주의 주 내 산업을 농공업 분야로 번창시켰다. 한스 자이델 박사는 오랜 병환으로 건강이 나빠져 1960년 1월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1961년 2월에는 기독교 사회 연합당(CSU) 총재 직에서 사임하였다. 이후 그는 1961년 8월 5일 삶을 마쳤다. 한스 자이델 재단은 한스 자이델 박사의 이름을 따 1967년에 설립되었다.